스탠딩 데스크 6개월 써보니: PM이 말하는 가장 솔직한 후기

4 min read0 viewsBy Coleme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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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 데스크를 산 건 허리 때문이 아니었다

당근마켓에서 2만원에 산 중고 스탠딩 데스크가 내 방 한쪽 구석에 도착한 건 작년 9월이었다. 사실 허리가 아파서 산 건 아니었다. 오후 3시만 되면 찾아오는 그 미친듯한 졸음, 피그마 파일을 켜놓고도 5분마다 슬랙 확인하고 유튜브 켜는 그 루틴을 끊고 싶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스탠딩 데스크는 여전히 내 책상 옆에 있다. 하지만 쓰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이제서야 말할 수 있다. 스탠딩 데스크가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건 개소리다. 최소한 내겐 그랬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PM 업무를 하다 보니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이 10시간은 된다. Notion에 스펙 정리하고, 피그마로 디자이너랑 커뮤니케이션하고, Zoom 미팅 3-4개 돌리고, 다시 Linear에서 이슈 정리하고. 이 모든 게 앉아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더 좋은 의자를 사거나, 서서 일하거나.

나는 후자를 택했고, 6개월간의 실험을 시작했다.

1주차: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첫 주는 지옥이었다.

  • 1일차: 2시간 서 있다가 포기
  • 3일차: 다리 근육통으로 계단 내려가기 힘듦
  • 5일차: 허벅지 뒤쪽 근육이 땅긴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음

"이게 맞나?" 싶어서 찾아봤다. 스탠딩 데스크 관련 레딧 쓰레드를 10개 정도 읽었다. 결론: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한다. 그리고 3-4주 지나면 적응된다고 했다.

거짓말 아니었다. 4주차쯤 되니 3-4시간은 서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첫 번째 깨달음이 왔다. 서 있다고 더 집중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리 피곤한 게 신경 쓰여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내가 찾은 스탠딩 데스크의 진짜 용도

2개월차에 접어들면서 사용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스탠딩 데스크로 옮겨가는 순간들:

  1. 슬랙 답장 몰아서 할 때 - 서서 하니까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진다. 평균 응답 시간이 체감상 30% 줄었다.
  2. 빠른 리서치가 필요할 때 - 경쟁사 앱 15분 둘러보기, 레퍼런스 10개 빠르게 스크롤하기 등. 서 있으니까 "빨리 끝내자" 마인드가 생긴다.
  3. 오후 2-4시 졸음 올 때 - 이건 확실히 효과 있다. 서 있으면 졸리지 않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4. 1on1 화상 미팅 - 서서 하니까 에너지가 다르다. 목소리 톤도 달라진다.

절대 스탠딩 데스크에서 하지 않는 것:

  1. 깊은 사고가 필요한 PRD 작성
  2. 복잡한 유저 플로우 설계
  3. 2시간 이상 걸리는 작업

결국 스탠딩 데스크는 "빠른 처리 모드"를 위한 공간이 됐다. 앉아서 하면 질질 끌 작업들을 서서 빠르게 처리하는 용도. 이게 내가 찾은 최적의 사용법이었다.

신체 변화: 숫자로 말하는 6개월

기대했던 것:

  • 허리 통증 감소
  • 체중 감량
  • 자세 개선

실제로 일어난 일:

  • 허리 통증: 변화 없음 (애초에 심하진 않았음)
  • 체중: -1.2kg (오차범위)
  • 발목/종아리 근력: 체감상 20% 증가 (계단 오를 때 확실히 덜 힘듦)
  • 오후 졸음: 70% 감소 (주관적 평가)
  • 평균 서있는 시간: 하루 2.5시간

가장 의외였던 건 발바닥 통증이었다. 3개월차쯤 발바닥 아치 부분이 아프기 시작했다. 검색해보니 이것도 흔한 증상. 해결법: 매트 깔기.

다이소에서 5천원짜리 요가 매트 샀다. 이게 게임 체인저였다. 발 피로도가 50% 이상 줄었다. 스탠딩 데스크 매트는 3-5만원 하는데, 솔직히 요가 매트로 충분하다.

PM으로서 발견한 예상 밖의 장점

디자이너 출신 PM이라 하루에도 수십 번 "잠깐만요"가 일어난다. 디자이너가 화면 보여주며 물어보거나, 개발자가 스펙 확인하러 오거나.

스탠딩 데스크 도입 전:

  • 앉아있다가 고개 돌려서 대화 → 목 아픔
  • 의자 돌려서 대응 → 왠지 귀찮아 보임
  • 일어나서 대응 → 자리 이탈하는 느낌

스탠딩 데스크 도입 후:

  • 이미 서 있으니 바로 반응 가능
  • 화이트보드로 이동도 자연스러움
  • "접근 가능한 PM"이라는 이미지가 생김

이건 정말 예상 못한 부분이었다. 팀원 한 명이 "요즘 XX님한테 말 걸기 더 편해졌어요"라고 말했을 때, 스탠딩 데스크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실천 가이드: 내가 다시 시작한다면

6개월의 시행착오를 압축하면:

1단계: 일단 중고로 시작하라

  • 당근마켓 2-3만원짜리로 충분
  • 새 제품 20-30만원은 낭비 (적응 못하면 그냥 쓰레기)
  • 3개월 써보고 마음에 들면 그때 업그레이드

2단계: 매트는 필수다

  • 처음부터 사지 말고 2-3주 후에 구매
  • 요가 매트(5천원) > 전용 매트(3만원+)
  • 두께 10mm 이상 추천

3단계: 루틴 설정이 80%다

내 현재 루틴:

  • 오전 9-10시: 앉아서 깊은 작업
  • 10-11시: 스탠딩 데스크로 이동, 슬랙/메일 정리
  • 11-12시: 앉아서 미팅 또는 문서 작업
  • 점심 후 2-4시: 스탠딩 데스크, 리서치/커뮤니케이션
  • 4-6시: 앉아서 마무리 작업

평균 2.5시간 서 있는데, 억지로 늘리려 하지 않는다.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작업"만 스탠딩 데스크에서 한다.

4단계: 실패를 인정하라

  • 어떤 날은 30분만 서 있고 끝난다 → OK
  • 일주일 내내 안 쓸 때도 있다 → OK
  • 스탠딩 데스크가 빨래 걸이가 되는 순간도 있다 → OK

완벽한 루틴 같은 건 없다. 3개월 동안 내 패턴이 5번은 바뀌었다. 계속 실험하고,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변화는 '선택지'가 생긴 것

6개월 써보고 나서 내린 결론: 스탠딩 데스크는 마법의 도구가 아니다.

  • 생산성이 2배로 올랐다? 거짓말.
  •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내 경우엔 아니었다.
  • 살이 빠졌다? 오차범위.

하지만 "앉아 있어야 한다"는 강제성에서 벗어났다. 졸리면 서고, 다리 아프면 앉고, 빠르게 처리하고 싶으면 서고. 이 선택지가 생긴 게 가장 큰 변화다.

PM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건, 대부분의 문제는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이분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탠딩 데스크도 마찬가지다. 100% 서서 일하거나, 100% 앉아서 일하거나가 아니라,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것.

2만원짜리 중고 스탠딩 데스크는 여전히 내 방 한쪽에 있고, 나는 오늘도 하루에 몇 번씩 자리를 옮긴다. 앉았다 서고, 섰다 앉고. 이 불완전한 루틴이 내겐 가장 완벽한 방식이다.


당신도 스탠딩 데스크를 고민 중이라면, 일단 중고로 시작해보라. 3개월 써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매일 8시간 서 있어야지" 같은 목표는 버려라.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순간에만 서 있으면 된다.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