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를 가진 PM이 6년을 버틴 방법 - 멘탈 관리의 현실

4 min read0 viewsBy Colemear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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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를 가진 PM이 6년을 버틴 방법 - 멘탈 관리의 현실

입사 3년차였던 2021년 여름, 나는 회의실 화장실에서 과호흡으로 쓰러질 뻔했다. 30분 뒤 중요한 제품 로드맵 발표가 있었고, 자료는 완벽했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게 불안장애구나" 싶었다.

디자이너에서 PM으로 커리어를 전환한 후, 나는 늘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가"라는 의심과 싸워왔다. 코드를 못 짜는 PM, 데이터 분석이 약한 PM, 비즈니스 센스가 부족한 PM. 내가 나를 공격하는 말들이었다.

지금은 6년차다. 불안장애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고, 때로는 꽤 잘한다. 이 글은 "극복했어요!"라는 성공담이 아니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기록이다.

불안장애가 PM 업무에 미치는 영향

불안장애를 가진 PM의 일상은 이렇다:

  • 의사결정 마비: 작은 결정에도 2-3시간씩 고민한다. "이 버튼 색상을 바꿨을 때 전환율이 떨어지면 어쩌지?" 같은 생각으로 A/B 테스트 하나 시작하는데 반나절.
  • 과도한 준비: 30분 회의를 위해 3시간 자료를 준비한다. 그리고도 불안하다.
  • 피드백 공포: 동료의 "이거 다시 한번 생각해볼래요?"라는 말이 "너는 무능해"로 들린다.

2022년 상반기, 나는 주요 기능 출시를 3번이나 미뤘다. 데이터는 준비됐고, 개발은 끝났지만, "혹시 뭔가 잘못되면"이라는 생각에 계속 검증을 더했다. 결국 경쟁사가 비슷한 기능을 먼저 출시했다.

그때 깨달았다. 불안은 나를 신중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마비시킨다.

정신과 진료와 약물치료의 현실

3년차 때 처음 정신과를 찾았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아픈가"라는 자책이었다.

약물치료 6개월의 기록:

  • 1-2주차: 부작용으로 졸음, 집중력 저하. 오히려 업무 효율 30% 감소
  • 3-4주차: 몸이 적응하면서 안정감 시작
  • 5-8주차: 불안 강도가 10점 만점에 8점에서 5점으로
  • 3개월차: "아, 이게 정상적인 긴장감이구나" 깨달음
  • 6개월차: 약 없이도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도구들을 습득

약은 만능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안의 음량을 줄여줘서, 내가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줬다. 지금은 필요할 때만 복용한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약은 지팡이예요. 다리가 나을 때까지 쓰는 거죠. 평생 의지할 필요도 없고, 쓰는 게 부끄러울 것도 없어요."

일상에서 실천한 멘탈 관리 루틴

1. 아침 루틴: Decision Fatigue 줄이기

불안한 사람은 하루에 내려야 하는 결정의 수를 줄여야 한다.

  • 옷 5벌 로테이션: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가 아니다. 아침에 "뭐 입지" 고민하는 10분이 불안을 키운다.
  • 아침 메뉴 고정: 월화수목금 아침 메뉴가 정해져 있다. 오트밀 → 그릭요거트 → 달걀 샌드위치 → 단백질 쉐이크 → 자유.
  • 출근 30분 전 워크업: 침대에서 바로 일하지 않는다. 15분 산책 + 5분 스트레칭 + 10분 아무것도 안 하기.

이 루틴을 시작한 후, 오전 회의에서 덜 얼어붙게 됐다.

2. 불안 일지: 패턴 파악하기

2022년 10월부터 "불안 기록"을 시작했다. Notion에 간단한 템플릿:

날짜: 2024-01-15 불안도: 7/10 트리거: 임원 회의 30분 전 신체 반응: 심장 빠름, 손 떨림, 화장실 3번 실제 결과: 회의 잘 끝남. 좋은 피드백 받음. 교훈: 예상한 최악은 일어나지 않았다.

6개월 치를 모아 분석하니 패턴이 보였다:

  • 월요일 오전 불안도 평균 7.2/10 (주말 후 업무 복귀 불안)
  • 실제로 일이 잘못된 경우: 8% (92%는 괜찮았다)
  • 불안도 8 이상인 날의 공통점: 수면 6시간 미만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내 불안의 92%는 현실이 아니라 상상이었다.

3. "최소 실행 가능한 완벽함" 원칙

PM은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든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MVP를 적용하기로 했다.

Before: 발표 자료 50장, 3일 준비, 완벽 추구
After: 핵심 메시지 3개, 슬라이드 15장, 1일 준비 + 1일 여유

처음엔 불안했다.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핵심이 명확해져서 피드백이 더 좋았다.

완벽은 불안의 연료다. 충분함은 불안의 소화기다.

4. "멘탈 체력" 개념

운동할 때 체력이 있듯, 멘탈에도 체력이 있다. 나는 하루에 "집중 가능한 시간"이 4-5시간이라는 걸 인정했다.

에너지 관리 원칙:

  • 오전 10-12시: 중요한 의사결정, 전략 문서 작성
  • 오후 2-4시: 회의, 커뮤니케이션
  • 오후 4시 이후: 루틴 업무, 슬랙 정리

6시 이후 중요한 결정은 하지 않는다. 멘탈 체력이 바닥일 때 내린 결정은 대부분 불안에서 나온다.

5. "불안 버튼" 만들기

급성 불안이 올 때 물리적 대응법:

  1. 4-7-8 호흡법: 4초 들이마시고, 7초 참고, 8초 내쉬기. 3회 반복하면 심박수가 실제로 떨어진다.
  2. 손 씻기: 차가운 물에 손을 씻으면 미주신경이 자극돼 진정 효과.
  3. 5-4-3-2-1 기법: 눈에 보이는 것 5개, 손에 닿는 것 4개, 들리는 소리 3개, 냄새 2개, 맛 1개 세기. 현실로 돌아오는 데 효과적.

2023년 9월, 투자자 미팅 직전 화장실에서 5-4-3-2-1을 했다. "흰색 타일 5개, 차가운 세면대, 물 흐르는 소리..." 3분 후 나는 회의실로 들어갔고, 피칭은 성공했다.

불안과 공존하는 PM으로 일하기

3년 전 나는 불안장애를 "고쳐야 할 결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관리해야 할 특성"으로 본다.

불안한 PM의 장점도 있다:

  • 리스크 감지 능력: 남들이 못 보는 엣지 케이스를 발견한다.
  • 철저한 준비: 90%의 경우 과하지만, 10%는 프로젝트를 살린다.
  • 공감 능력: 나도 불안하니까, 팀원들의 불안을 더 잘 이해한다.

문제는 불안 자체가 아니라, 불안을 컨트롤하지 못할 때다.

지금도 어려운 결정 앞에서 심장이 빨리 뛴다. 여전히 밤에 "내가 뭘 놓쳤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게 나를 좋은 PM으로 만들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선택은 내가 한다.

당신이 오늘 할 수 있는 3가지

불안과 싸우는 PM이라면:

  1. 불안을 숫자로 만들어라: 오늘 불안도는 10점 만점에 몇 점인가? 기록하라. 3주 후 패턴이 보인다.

  2. 하나의 루틴을 고정하라: 아침, 점심, 저녁 중 하나만 선택해서 2주간 동일하게 반복하라. 뇌는 예측 가능성을 좋아한다.

  3. "충분함"의 기준을 정하라: 다음 작업물에 대해 "여기까지 하면 충분하다"는 선을 미리 정하라. 완벽은 없다. 충분함만 있다.


불안장애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살 수는 있다. 나는 6년을 버텼다. 당신도 버틸 수 있다.

불안한 당신이 오늘도 출근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다.